2009년 6월 10일 수요일

차라리 위선이라도

나는 나이가 어려서(?) 6.10 민주항쟁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없다. 그냥 서울 변두리에 살며 학교와 집만 오가던 착한 학생이었으니까.(6.10 하면 국사 시간에 먼저 배운 일제강점기 6.10 만세운동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1987년 6월이 얼마나 의미로운 시기였는가는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다. 대학에 가서 6월 29일을 '제2의 만우절'로 부르기도 하고, 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얼마나 쓸쓸하게 끝나고 말았는지 배우기도 했다.

 

나는 나이가 어려서(!), 전국을 휩쓸고 서울시청앞을 메웠던 넥타이 부대의 열기 같은 건 잘 모른다. 넥타이 부대라니, 에엑, 아저씨들! 하는 기분이 먼저랄까? 그렇지만, 서울광장에서 공식적으로 6.10 기념행사가 불허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좀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도 아니고, 6.10 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라니, 대체 이 정부는 '위선'도 모르는 걸까? 속 깊이 착하지 않더라도 겉으로라도 착한 척을 좀 해라. 속 깊이 '민주주의 따위!'라고 생각하더라도 겉으로는 민주주의의 분칠을 좀 하란 말이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광장 하나 호탕하게 열어주지 못하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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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철학과 교양수업 시간에 소흥렬 교수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감색 트랜치코트를 즐겨 입던 로맨스 그레이였던 교수님은 수업 중간에 불쑥,

"현장에 서 있도록 하세요. 나중에 여러분의 손자 손녀가 '할머니, 할머니는 그때 어디에 있었어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건가요? '나는 그때 도서관에 있었단다.'라고 대답할 작정입니까?"

하고 말했다. 그 '현장'이 어디인가를 구체적으로 지목했던 것은 아니다. 수업 중간에 흘리듯 지나쳐간 말이었다. 그러나 한 학기 수업 가운데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선생님의 가르침은 바로 그 말이었다.

 

손자 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지. 그때는 그게 마냥 쉽진 않아도 또 그렇게 어렵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그렇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끔 다시금 떠올린다. 손자 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지. 내 삶에 가장 큰 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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