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링딩동이 불러오는 기억

오랜만에 TV에서 링딩동을 노래하는 샤이니를 보았다.

프루스트는 마들렌 향기로부터 과거의 기억을 불러왔지만, 나는 종종 음악으로부터 그런 기분을 느낀다. 링딩동의 전주는 야근과 휴일근무에 시달리며 (물론 이게 이유는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던 그 순간을 불러온다. 사무실 공기의 질감과 온도, 냄새까지 다시 느껴지는 것만 같다. 쓸쓸함의 무게 같은 것까지.

이미 그 시절의 흔적은 물리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무실도 이사갔고. 그러나 앞으로도 꽤 한참동안은 링딩동을 들을 때마다 다시 그 느낌이 떠오를 게다. 그게 음악의 힘인지도 모른다. 노래 내용 자체와 아무 상관 없이 단지 내 기억의 어느 순간과 묶여 있게 된 노래다, 링딩동은.

2010년 8월 16일 월요일

스킨을 바꿔 보았다

요즘 블로그보다는 트위터나 페북에 빠져 있다.
... 이런 문장을 전에도 썼던 것 같은 기시감.

회사 홈피 대신 티스토리 팀블로그를 하게 되어서 매일 매일 포스팅을 하다보니, 문득 내버려두었던 티스토리 블로그를 살려볼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그 역시 잠깐일뿐, 금세 지루해질 것 같다.
편집국 네이버 블로그를 하는 김에 네이버 블로그도 많이 쓰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거든. 요즘은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 시들해진 것만 같다.

토, 일을 내내 회사 이벤트 때문에 보내고, 오늘은 대휴지만 마감 때문에 또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모처럼 들어온 원고들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쌓인 피로 대문에 무기력해진 것일까?

트위터 @koniestas
페북 facebook.com/koniestas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마감중

인쇄물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하면서도 사적인 글을 맹렬하게 쓰는 이들이 매우 존경스러워지고 있다. 마감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블로그, 심지어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부담스러워진다. 이러다 활자가 싫어지는 건 아니겠지.

사무실의 원두가 다 떨어졌다. 사무실 근처에 좋은 원두를 살 만한 곳이 있으려나.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거울 앞에 서다

10년 전의 상사: 어떤 꽃을 좋아해? (난초라는 대답에) 그럼 난초 사주면 식사 한 번 같이 할 수 있는 건가?
3년 전의 상사: K씨는 쇄골미인이야.
현재의 상사: 오늘 머리 풀고 왔네? 묶는 것보다 훨씬 잘 어울려. 섹시해.

그들이 직장내 권력을 이용하여 뭘 어떻게 해보려는 의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럴 의도가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이 닥치더라도 나는 다행히 발로 차줄 강단이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언사가 회사생활의 '기름칠'이라고 생각한대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런 마음은 오만에 가깝다.

되짚어 보면 참 서글픈 노릇이다. 당신의 '이른바 칭찬'이 상대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분노조차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다만, 삶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나는 어떤가? 내가 건넨 말이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킬까?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고 싶다.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오월

오늘은 5월 18일, 5.18 민중항쟁이 서른돌을 맞은 날이다.
정부(보훈처)가 3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고, 새삼 감탄하였다. 이 정부는 이름이나 예의 같은 것 과감하게 무시하며 스스로의 정치노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구나. 5.18 민중항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포기할 줄 모르는구나. 사태나 폭도나 뭐 그런 이름으로 소리 높여 부정하지 않는 게 어디인가. 아마도 많은 이들은 그게 스스로 최대한의 타협이라 생각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지 모르겠다.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대통령은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백기완 선생의 시에서 왔다. 백기완 선생은 통일운동가로 유명하지만 기묘하게도 운동권 가운데에서도 소수파들의 편에 서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 노래는 '민중의 애국가'라는 별명으로, 집회나 시위의 현장에서 많이 불려왔다. 아마도 그래서 정부가 불편해한 것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기억하고 어떤 사람들은 잊었을지 모르나 1990년대 초반 한때, 학생운동권에서 맘껏 불리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백기완 선생의 가사여서. 졸렬한 처사였다.

그러나 그러니, 정부의 졸렬한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당연하다. 시커먼 속으로 어찌 이 노래가 울려퍼질 때 떳떳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 계속 졸렬하라. 맘껏 졸렬하라. 다만, 그 뒤에 따르는 수모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니, 이런 수모야말로 정부가 바라는 바일지도 모르겠다. 반민중적이라는 딱지가 오히려 이 정부에는 훈장일 테니.

2010년 5월 15일 토요일

너의 편이 될 거야

목요일에 Paz와 만나서 티셔츠와 배지를 받고 밥과 술을 했다. 같은 공간을 스치는 정도의 인연이었을 뿐,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몰랐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말 파란만장했더라. 나도 때로는 꽤 재미있게 살아왔지 하고 감탄하는데, 내가 솜사탕 같은 하이틴 영화라면 Paz는 첩보스릴러일까.
그러니, Paz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했을 다른 친구들이 떠올랐다. 나름대로 가까이에서 믿는 구석이 되어줄 거라고 살아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와 친구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질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제 현정이를 만났다. 뒷북 치는 내가 어처구니없었겠지만 달관한 듯 이야기했다. 그냥 생활인이 되는 거다, 라고. 그 전환점에서 현정에게 '이제야 정신 차렸구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그건, 한때라도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의 몫일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그건 아니지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나로서는 참견할 염치도 없는 일이다. 다만 현정이 맘이 많이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고통스럽고 회의하고 텅 비어버리는 그 시간 동안 내가 곁에 없었던 게 아닌데, 그 마음을 토로할 수 없는 친구란 또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 현정이에게 나는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은 것도 같다. 예전에 내 애인이 나쁜 사람이란 소문에 그 바쁜 와중에도 모임에 뛰쳐왔던 게 기억난다.

"진짜로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아냐, 진짜로 좋아한다니까."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현정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세간의 눈대로라면 많은 짐을 지고도 의연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건 수사가 아니라 진실이지 싶게 만드는 친구. 나는 정말 쿨하고 거짓말 못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나는 니가 무슨 일을 하든 니 편이 될 거야.

2010년 5월 12일 수요일

가혹한 인쇄의 나날

마감이 끝나고 인쇄도 끝나고 지금은 중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창간준비호 만든다고 기사 마감하고 디자인 작업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 고 생각했는데, 인쇄 과정을 생각하면 그게 또 별 것 아닌 거처럼 느껴질 지경.

내일이 사업설명회여서 오늘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잡지가 나와야 하는데, 어젯밤까지 종이가 마련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 한 달 전에 인쇄가 잡혀 있는데도 어제 오후까지 스노우화이트 80g이 구해지지 않았고, 결국 종이를 바꿔야만 했다. 결국 진국이 아는 사람을 통해 종이를 샀는데 이번에는 택배기사가 어디론가 딴길로 새서 인쇄소에 도착하지 않았다. 오후 8시로 잡혀 있던 인쇄 시간은 결국 10시로 미뤄졌고, 또 11시로, 12시로 미뤄졌다. 그러고는 1대 인쇄가 끝나자 인쇄기계가 고장나서 또 두 시간 동안 기계를 고쳤다. 새벽 4시 30분쯤에는 페이지가 잘못 들어간 것이 발견되어 이미 판을 바꾸기엔 늦어서 그냥 페이지 숫자를 지워버렸다. 이 모든 인쇄 과정을 감독한 건 유니다. 집이 인쇄소와 가깝다는 이유로 유니는 새벽까지 집과 인쇄소를 왔다 갔다 하며 애를 썼다.

4시에 잡지가 출발할 예정이라고 인쇄소 전무가 전화를 했다. 어제는 5시 30분에 을지로에서 출발했다던 종이가 독산동 인쇄소에 자정 가까이에야 도착했으니, 오늘 4시에 인쇄소를 출발하는 잡지는 공덕동 사무실에 몇 시쯤 도착하려나?